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시면서 그동안 낸 책들을 모두 절판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서점에서 오히려 법정스님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져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큰 돈을 벌 기회를 맞은 출판사들은 '절판' 유언이 공개되자 출판권 계약이 남아 있는 기간에도 책을 찍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법정 스님은 입적 직전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기를 당부했다. 이 유언 때문에 법정 스님의 저서를 출간한 출판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범우사 윤형두 회장은 "법정 스님 입적 직전에 '무소유' 1만부를 인쇄하려고 준비했다가 유언을 듣고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샘터사 김성구 대표는 "스님이 이사장으로 계셨던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의 결정에 따라 절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의숲 고세규 대표는 "지난 4일 스님을 찾아뵈었지만 절판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서 "스님과의 마지막 약속은 '계약서'이므로 계약서대로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출판사들은 당분간 법정 스님이 직접 쓰신 책이 아니라 '법정 스님에 대한 책'으로 돈을 벌 궁리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몇 가지 진부한 제목이 벌써부터 떠오른다. "법정과의 마지막 100일" "법정 스님 마지막 말씀" "법정의 가르침" "법정처럼 살아라" "법정과 무소유 정신" 등등..

법정 스님은 무슨 의도로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기셨을까.
여러 가지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인세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동안 '맑고 향기롭게' 쓰셨다고는 하지만 사실 법정스님이 인세를 어떻게 쓰셨는지는 아직 공개된 바가 없다. 76년 <무소유> 출간 이후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써 온 스님이시기에 인세는 상당 수준이었을 것이다. '익명 기부'도 하셨을 것 같고,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직을 하셨으니 그 단체의 봉사활동이나 기부활동에 쓰셨을 것도 같다. 또 '다기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지 못했다'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 인세 중 아주 약간으로 다기를 사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본다.

어쨌든 법정 스님의 책은 한번 확 팔리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70년대 책이 아직까지도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만약 스님이 아니라 자녀가 있는 일반인이었다면 저작자 사후 50년 동안 저작권이 보장되는 법에 따라 자녀분이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정도로 인세가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앞으로 계속 발생한 인세의 권리와 관련해 문제가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글이라는 것도 남기고 가는 게 불편하셨을 수 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더 강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이미 스님의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려나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절판을 한다고 해서 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생각은 애초부터 달성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떠오른 생각이  '지적재산 환원'이었다.

오전에 다음과 같이 트윗을 했더니, 강정수님이 아래처럼 답글을 달아주셨고, 또 많은 분들이 이를 RT하며 공감을 표해 주셨다.

pariscom 내가 법정스님이었다면.. 책을 절판하라고 하기보다는.. 저작권을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어버리고 누구나 인터넷으로 보거나 받을 수 있도록 했을 것 같다.

npool @pariscom 아마 퍼블릭 도메인에 대해서 잘 모르셨을 겁니다. 이를 알리는 켐페인이 있어야할듯. 장기기증처럼요, 사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지적 자산, 사회에 돌려주는 것, 공유의 미덕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고인의 유언에 대해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말하는 게 예의는 아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라면 좀더 무소유,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었을 텐데 잘 모르셔서 '절판'을 당부하셨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신 후 '안구 기증' '장기 기증'이 확산되었던 것처럼, 만약 법정스님께서 지적재산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유언을 남기셨다면, 그 같은 문화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질적인 부처럼, 지식도 결코 한 사람이 혼자 힘만으로 이룰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2010/03/14 14:29 2010/03/14 14:29
, , , ,
Response
7 Trackbacks , 12 Comments
RSS :
http://pariscom.info/rss/response/337

Trackback URL : http://pariscom.info/trackback/337

Trackbacks List

  1. '무소유'를 '소유'하기 위한 행렬

    Tracked from 프로메테우스의 꿈 2010/03/15 11:39 Delete

    어제(11일)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셨다. 스님께서는 생전에 영혼을 어루만지는 가르침을 책으로 펴내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인기를 얻기도 하셨다. 특히 1976년 출간된 <무소유>는 지금까지 290만

  2. 민노씨의 생각

    Tracked from minoci's me2DAY 2010/03/16 04:26 Delete

    강추) 법정스님의 '절판' 유언과 지적재산 환원 http://bit.ly/cfwQDo (pariscom) // “…그 방법이라면 좀더 무소유,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었을 텐데…” 펄님 말씀처럼 고인께 예의는 아니나 아쉬

  3. 왜 법정 스님께서는?

    Tracked from Cliomedia 2010/03/16 08:53 Delete

    얼마전 입적하신 왜 법정 스님께서는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자신의 책을 다시 내지 말라고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 때문인지는

  4. 펭도의 생각

    Tracked from pengdo's me2DAY 2010/03/16 12:05 Delete

    법정스님이 CCL을 알았더라면. '절판'대신 '지적기부' 유언을 남기셨더라면.

  5. 서울비의 알림

    Tracked from seoulrain's me2DAY 2010/03/16 19:58 Delete

    법정스님의 '절판' 유언과 지적재산 환원 — by 펄

  6. Jay의 생각

    Tracked from iwillbe99's me2DAY 2010/03/16 21:56 Delete

    RT gatorlog님: 법정스님의 '절판' 유언과 지적재산 환원 http://bit.ly/bBr9eD 아주 좋은 생각이고 블로기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글이네요. pariscom님

  7. Creative Commons를 권하며...

    Tracked from 고어핀드의 망상천국 2010/04/07 00:49 Delete

    최근 주위 블로그에서 저작권 공개 관련 논의들이 오가서, 평소 생각하던 바를 풀어 놓으려 합니다.아는 분은 다 아시지만, 저는 제 사진을 보관하는 데 flickr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웹사이트 메

Comments List

  1. 네야 2010/03/15 00:54 # M/D Reply Permalink

    -내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해 사용해 달라. -

    라고 유언을 남기셨으니 저작권 공개라고 보느것이 맞을것같습니다. 출판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말빛'을 남기지 않기위서라고하셨으니 금적적 문제요소 때문에 출판을 금하신걸겁니다. 출판계라는대가 어떤곳인지 책을 가까이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적어도 출판업자분들은 참 천박한 사고의 극치를 가진 분들이 많지요. 게다가 스님 책의 출판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출판사 사장 인터뷰기사를 보니 참 어이를 상실할정도의 개념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정당한 인세 안주는게 무슨 자랑거리로 아는 사람이더군요.

    1. 2010/03/15 18:04 # M/D Permalink

      저는 '말빚'을 인세 쪽 보다는 아래 foog님처럼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남기고 가지 않고자 하는 생각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좀더 강하게 들었고요..
      하지만 네야님 말씀처럼 출판업자의 문제를 느끼셨을 거라는 생각도 분명 듭니다. 책을 많이 펴내신 만큼 그들의 행태에 질렸을 것 같아요.

  2. foog 2010/03/15 10:30 # M/D Reply Permalink

    아내와 법정스님의 책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절판시키라는 유언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책이건 블로그건 간에 또는 글이건 또 다른 표현양식이건 간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것은 불교식으로 보자면 일종의 '업'이죠.(선업이든 악업이든 간에) 그런 견지에서 보자면 스님의 유언은 더 이상 업을 쌓고 싶지 않다는 바람일 수 있겠죠. 알량한 블로그 운영하는 저조차 과연 블로깅에 대해서 고민하는데 하물며 그런 분이면 더더욱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1. 2010/03/15 18:06 # M/D Permalink

      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 유언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게, 예전에 제가 죽을 때 블로그 글을 다 지우고 갈까 말까 했던 고민이었거든요.
      하지만 위에 썼듯 이미 책이 엄청나게 많이 깔려 있고 꾸준히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펴내신 스님의 입장에서는 그 소원은 애초부터 이루기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Clio 2010/03/16 09:19 # M/D Reply Permalink

    좋은 말씀 읽고 갑니다. 여러 가지 일치하는 생각이 많아 트랙백을 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1. 2010/03/16 10:00 # M/D Permalink

      트랙백 감사합니다. 클리오님 블로그에 댓글 남겼습니다.

  4. 필로스 2010/03/16 20:01 # M/D Reply Permalink

    너무 인상적이어서 트랙백으로 첨언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말았습니다. 저도 '말빚'은 푸그님처럼 해석하고 있었습니다만, 생각해 볼 꺼리가 많네요..

    1. 2010/03/18 17:32 # M/D Permalink

      댓글 감사합니다. 아래 엔디님이 링크해주신 글을 보니, 법정 스님이 저작권과 인세 쪽을 걱정하신 것도 맞는 것 같네요..

  5. 엔디 2010/03/16 21:37 # M/D Reply Permalink

    법정스님의 상좌인 길상사 덕현 주지스님은 저작권 문제로 인한 잡음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하시더라고요.
    http://media.daum.net/culture/religion/ ··· 24404313

    그런데 푸그님 말씀도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

    문제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 말이 자신만의 말이지만, 말한 뒤에는 그 말은 자신만의 말이 아니라는 점이죠. 페터 한트케 시의 한 구절처럼 이미 던져진 막대기는 다시 거둬들일 수 없는 것이죠.

    "아이가 아이였을때
    창을 던지듯 막대기 하나를 나무에 던졌고,
    그 막대기는 오늘도 여전히 그 곳에 걸려있다."

    1. 2010/03/18 17:32 # M/D Permalink

      말한 뒤에는 그 말은 자신만의 말이 아니다.
      정말 인상적인 문구네요.
      막대기의 비유도 와 닿습니다.
      매일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얼마나 많은 말빚을 계속해서 지고 있는 것인지...

  6. indiz 2010/06/28 13:42 # M/D Reply Permalink

    요새 보는 웹툰중에 저승세계를 다룬 것이 있는데, 이승에서 말로 죄를 지은 이는 염라대왕이 혀를 뽑아서 그 위에 소가 밭을 갈도록 한다더군요.

    벌써부터 혀가 얼얼해져 옵니다.

    1. 2010/07/21 18:51 # M/D Permalink

      음.. 트위터까지 엄청 써대고 있는 저는 뭐.. 사후세계는 없다고 믿는 게 맘 편하겠습니다; ㅋ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 343 : Next »

블로그 이미지

펄의 삶 생각 느낌들을 적는 공간입니다. http://blog.naver.com/pariscom에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메일은 pariscom@gmail.com입니다.

- 펄

펄과 만나는 방법

Archives